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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아일기 (feat. 공대 아빠)

키울 때는 길지만,
돌아보면 짧은 육아

아이가 태어난 지 3년.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 속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은 물론 가슴 아픈 기억들도 있죠. 그런 것들이 쌓여 함께 부대끼며 살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울기만 하던 갓난 아기를 보며 ‘언제 아빠라고 불러 주려나’ 생각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못하는 말이 없는 4살 아이가 되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만 세 살 까지의 성장속도가 무척 빠르기도 하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더욱 쏜살같이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그 때는 그랬지 하며 웃게 될 날이 올 줄 정말 몰랐습니다.

Writer. 김성수

감격의 순간

아이가 세상에 나오던 날, 그토록 강렬한 기억은 제 인생을 통틀어 처음이었습니다. 아내는 임신을 하기 전부터 수중 분만에 대한 생각이 확고 했습니다. 수중 분만은 남편이 아내를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어서 저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아이가 물속에서 나오기 전 까만 머리카락이 물 속에서 나풀거리던 때 어찌나 마음이 두근거리던지요. 아내의 고통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빨리 아이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교차되는 순간. 기세 좋은 울음을 터뜨리며 아기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출산을 마친 아내가 처치를 받는 동안 하얀 속싸개에 쌓여져 제 품으로 온 아기와 단둘이 방에 있을 때 아내는 괜찮은지 생각도 못할 만큼 황홀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빠’하고 처음 저를 부르던 날도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아이는 엄마라는 말보다 아빠라는 말을 훨씬 먼저 했습니다. 아이가 백일이 되기 전 재우려고 매일 안고 흔들흔들 해주었던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 아빠를 먼저 불러주었고, 엄마라는 단어를 제대로 발음한 것은 그보다 한참 뒤의 일입니다. 지금도 저만 보면 걷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자동으로 안으라고 하는 것이 문제이긴 합니다만.

떠올리기도 싫은 순간

부모에게 가장 끔찍한 일은 두말 할 것 없이 아이가 다치는 일일 겁니다. 그건 정말 눈 깜짝 하는 순간 입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나면 아이가 다치지 않았을 상황을 수십 번도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내와 아이가 기차를 타고 가다 기차 테이블에 손가락이 끼어서 아이 손톱이 빠진 일이 있습니다. 그 때 일이 바빠 지쳐있던 저를 배려해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처가에 가던 길이었는데, 아내를 처가에 가게 만든 제 자신이 얼마나 원망스럽던지요. 아이는 손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자지러지는데 기차는 계속 달리고. 아내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응급실에서 마음 졸이며 대기 하던 시간, 너무 작아 보이지도 않는 아이의 손톱을 치료하던 광경, 최악의 경우에 대해 이야기하던 의사의 얼굴. 다시 되돌려 보아도 끔찍했던 순간입니다. 다행히 아이의 손가락은 무사합니다. 손가락이 다 나았을 때는 십 년을 감수했다는 말의 참뜻을 알겠더군요.

고통의 순간

우리 아이는 뒷통수가 동글동글 밤톨 같이 예쁩니다. 태어나서 200일까지 배앓이가 심했는데, 그 때 까지 누워서 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저는 세상의 모든 아기들이 그렇게 하루 종일 우는 줄 알았습니다. 잠을 자는 시간 빼고는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울었는데, 이유를 알 수 없는 저희 부부는 정말 애가 탔습니다.

이 병원 저 병원 가보아도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이야기 말고 속 시원한 대답은 없었으니 미칠 노릇이었습니다. 그나마 안고 흔들어 주면 울다 지쳐 잠들었다가 잠이 깨면 다시 울기 시작하는데 어찌나 안쓰럽던지요. 그 땐 저와 아내 둘이 번갈아 가며 아이를 하루 종일 안고 흔들고, 아이를 배 위에 엎어 재우며 함께 잠들고 그 날의 첫 끼를 밤이 다 되어서야 먹곤 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아이를 원 없이 안아주었으니 ‘좀 더 많이 안아줄걸’ 하고 나중에 후회할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뿌듯한 순간

고작 네 살 짜리 아이에 대해서도 부모라고 다 아는 것은 아니더군요. 우리 아이는 어떤 성향의 아이다 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틀리기도 하고, 몰랐던 부분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지난 연말 처음으로 아이 어린이집에서 재롱잔치를 했습니다. 평소 낯을 많이 가리고, 고집도 있는 아이라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무대에 멀뚱히 서 있다 내려오는 장면을 예상했습니다. 아이가 이만큼이나 커서 재롱잔치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설렜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무대에 입장하는 모습부터 사뭇 진지하더니, 선생님의 구령에 따라 끝까지 침착하게 준비한 노래와 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날 찍은 동영상을 돌려보니 엄청 상기된 목소리로 ‘작은별’ 노래를 따라 하는 제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었습니다. 누가 들으면 올림픽 무대에 선 딸을 응원하는 줄 알았을 겁니다.

수많은 순간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나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마당에 심을 꽃을 사러 꽃시장에 다녀왔습니다. 아이가 나오기 전에도 해마다 봄이면 꽃을 사오곤 했는데, 이번이 아이와 함께 맞는 네 번째 봄입니다. 사진첩을 뒤적여 보니 지난해에도, 지지난 해에도 아이와 함께 꽃 시장에 다녀왔더군요. 이제는 흙을 삽으로 파고 꽃을 심는 걸 제법 잘 합니다. 꽃 심는 게 정말 좋다고 조잘조잘 말도 합니다. 내년 봄에도 우리 가족은 꽃시장에 다녀와 마당에 꽃을 심겠지요. 내년은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매해 같은 일을 하는데, 우리 가족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맛있게 식사하고, 목욕하고, 책을 읽으며 잠이 드는 매일의 똑같은 하루가 계속 되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 아이도 제 곁을 떠나는 날이 오겠지요? 마음껏 예뻐해 줄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남지 않은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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