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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육아휴직일기 (feat. 공대 아빠)

어떤 아빠로 기억될 것인가

⁠언젠가 본 어떤 글이 생각난다. 여자의 아버지는 원양어선을 타는 지라 일년에 몇 번 볼 수 없었고, 그래서 여자는 아버지를 대하는 것이 항상 낯설고 부끄러웠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교길에 멀리서 아버지가 걸어오는 것을 발견했는데, 아버지가 길에 핀 들꽃을 주섬주섬 꺾어 꽃다발을 만들어 그녀에게 건내며 둘은 실로 오랜만의 재회를 했다. 그 기억은 그녀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고. ⁠나에게도 몇가지 기억이 있다. 나의 아버지가 대나무로 살을 만들어 연을 만들고 함께 연을 날리던 기억, 밤낚시를 따라갔다가 라면을 끓여 먹었던 기억. 아버지를 생각하면 함께 떠오르는 유년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 그림처럼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Writer. 김성수

⁠아직은 부족한 아빠

⁠가족이라 해봐야 아내와 나, 그리고 아이. 이렇게 달랑 셋이니, 아이에게 나의 존재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모든 부분에서 나는 늘 엄마 다음이다. 아직은 어린 아이지만, 점차 소녀티가 나면서, 때로는 나를 좀 무시할 때도 있고, 엄마와 둘의 관계에서 일부러 배제 시키려고도 한다. 하지만 아이에게 아빠가 당연하게 존재하며 자리를 지키는 것과 진짜 없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의 차이는 명확하기에 크게 괘념치 않고 있다.

⁠얼마 전 잦은 야근으로 아빠와의 시간이 부족했던 아이가 엄마와 둘이만 간 식당에서 아빠가 없어서 아쉽다며, 다음에 꼭 함께 오자고 이야기 했다는 것을 들었을 때는 다행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딸과 엄마의 단단한 성벽 같은 관계에서 그래도 나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아이가 점차 자라 사춘기가 되어 아빠를 멀리하지 않을까 걱정도 들지만, 그 때가 되서 아이가 아니라 내가 비뚤어지지 않고 바른 아빠로 자라야(?) 하겠단 생각도 든다. 멋지고 좋은 아빠가 되어야 할 텐데.

⁠생긴 대로 살 수 없는 부모의 삶

⁠나는 말로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늘 어색했다. 10년에 가까운 결혼 생활 동안 아내가 많이 답답해 했다.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지만, 참 변하지 않는게 사람이다. 얼마전 아내가 나에게 아이를 예뻐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꼭 말로 자주 해주라는 당부를 했다. 어떤 사람이 되는가는 결국 부모에 의해 좌우되는 것인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나에게서 내 부모의 모습을 발견하고, 나의 경험에 빗대어 그것을 수용하기도, 극복하려하기도 한다. 지금 나의 부모로서의 모습은 나의 부모의 모습과 신기하리만치 똑같다.

⁠내 아이가 나를 다정하지 않은 아빠로 기억하면 어떡하나. 감정표현에 서투른 점을 닮아 가까운 이들에게 상처 주고, 상처 받는 사람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 때가 있다. 나의 나쁜 점이 아이에게 그대로 대물림 된다고 생각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점을 고쳐야지 생각하지만, 그마저도 참 쉽지 않다. 적을 알고 나를 아는데도 쉽지 않은 육아라는 큰 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좋은 부모가 되는 길.

⁠가장 나다운 방식으로 좋은 부모가 되기

⁠부모가 됐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될 순 없는 노릇이다. 여러 부분에서 나를 점검하고, 안좋은 점을 고치려고 애도 쓰지만, 나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좋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육아는 양보다 질이라 했던가. 가끔은 아이와 일부러라도 둘만의 시간을 갖고, 짧은 시간이라도 그 시간 동안은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하려고 한다. 꼭 어딜 나가서 어떤 활동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일상적인 일들을 오롯이 아이와 즐기는 것. 밥을 차려 함께 먹는다거나, 괜히 먼 거리에 있는 슈퍼에 산책 삼아 다녀온다거나 하는 일상적인 일들. 엄마가 없는 김에 군것질도 좀 하고, 늦은 시간까지 마당에서 놀기도 한다. 이젠 아이가 많이 커서, 내가 제시하는 놀이나 상황들에 따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하고, 나를 거기에 맞추게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적극적으로, 그리고 즐겁게 아빠와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너에게 세상 최고의 아빠가 되고싶은 마음

⁠아이는 이제 막 세 돌이 지났다. 먹고 자고 싸고 이 세가지가 가장 중요했던 아기 시절이 벌써 까마득한 옛날 같다. 자기 주장도 세지고, 자주 토라지고, 상처받고, 서럽고, 아쉽고, 서운하고, 기쁘고, 즐겁고, 신이 나고 하는 온갖 감정을 다 아는 하나의 인격체가 되었다. 이제는 엄마 아빠와의 관계 뿐 아니라,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들과 친구들과의 관계에도 감정을 쏟기 시작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엄마에게 어린이집에서 친구들에게 속상했던 일을 얘기하며 펑펑 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너도 이제 정말 사람이 되었구나. 살아가며 넘어지고 깨지고 다치고 하는 온갖 고난과 역경들을 견뎌내야 하겠구나… ⁠

⁠아이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가 아내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자라는 것, 단 하나다. 눈물을 흘리더라도 스윽 닦아내고,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나는 강한 내면을 갖는 것. 그리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에게는 엄마 아빠가 있다, 그러니 괜찮다 하는 든든한 마음을 갖는 것. 그런 사람으로 자라려면, 마음 속에 아빠의 존재가 미덥게 자리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또 아빠의 존재가 미덥게 자리하려면, 아이와 보내는 하루하루를 좋은 기억으로 차곡차곡 쌓아가야 한다는 것도. ⁠나의 부족함을 아이가 채워주고 있듯이, 앞으로 평생 동안 아이의 인생에서 갈팡질팡하는 순간, 멈칫하게 되는 순간, 주저앉게 되는 순간 들에 아빠를 떠올리고, 기대고, 위로 받게 되길 바란다. 아이의 그림 속에 나는 함께 손을 잡고 슈퍼에 가서 음료수 하나 사서 나눠 먹는 별일 없는 아빠의 모습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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